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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시인들도 가을엔 수확을 하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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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24 03:20 조회 15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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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작가상',

참으로 멋진 상이 있었군요.

시를 볼 줄 아는 분들이 주관을 하시는가 봅니다.

저같은 촌놈은 철 들 때까지 감자를 캐며, 까치소리를 들으며 살았지요. 요즘도 아파트에 둥지를 튼 까치들의 소란스런 모닝콜로 눈을 뜨곤 한답니다.

눈물 젖은 학창시절은 쪽방의 추억으로 남아있고, 중늙은이가 되어서야 사랑니를 뽑아냈지요. 그 뿐인가요? 아직도 구르는 낙엽을 보며 시려지는 가슴을 갖고 있어요.


어쩌면 그리도 정확하게 제 추억의 뇌관들을 건드리셨는지요? 그 공감대가 심사위원들이라고 다르지 않을 터. 사물의 예각을 어찌 그리도 족집게처럼 집어내셨는지 감탄 감탄입니다.


풍성한 수확물 앞에서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계실

두메솔 선생님을 생각합니다.

저도 찬바람 닥치기 전에 서둘러 논에 나가 보아야겠습니다. 아직 논바닥에 주워올릴 이삭이나 남아 있을지 걱정입니다만.


쌍수를 들어 풍성한 결실 축하드립니다.

더욱 건승하시고 시운(詩運) 왕성하시길 빕니다.


양지바른 고당관의 백규서옥에서


백규 드림




>晩秋의 따듯한 시 5편

>(2008 한비작가상 수상작)

>

>

>감자 캐기  

>               이재관

>

>

>땅 밟고 다니는 나야

>내리 헛걸음이었지

>다크 초콜릿의 쌉쌀 달콤한 그 곳은  

>날마다 밸런타인데이 머드축제였나

>눈 가리고 사랑의 실뿌리를 몸에 감더니

>실하게 컸구나

>

>찾을 때 바로 거기 있기란 쉽지 않을 텐데

>햇빛 눈부셔 도리질하며

>몰랐다는 표정이 왕 능청이다.

>한바탕 세상 환하게

>줄줄이 일어서며 따라 웃는다.  

>-------------------

>

>

>

>쪽방

>              이재관

>

>

>엄마 맘마 아가야

>속삭이는 소리

>손만 뻗으면

>조각배 싱그러운 뱃전 타고 흘러  

>다 만져진다, 다 들린다.

>

>내게 남아 있는 사랑은 한 평일까 반 평일까

>쪽방에선

>정밀조준을 할 수 있다

>메주 띄우듯 더미더미 쌓을 수 있다

>

>습기 없는 소나무 껍질 속

>정적靜寂의 냄새 자욱하고  

>세상의 고압전류 과잉재고는

>아무리 벗어도 헛헛하지 않았다.

>-----------------

>

>

>

>사랑니

>              이재관

>

>

>방학 끝난 아이들과 작별한 후로 치통이 왔다

>불과 며칠,

>사탕과 초콜릿을 너무 먹었나,

>아래쪽 사랑니는 뿌리가 깊단다.

>두 바늘을 꿰맸다.

>

>멀리 있어 보이지 않는 것은

>차라리 잊기 쉽다.  

>뽑힌 자리 보이는 것 들리는 것들은

>뜨개질해야지  

>미열(微熱)의 호롱불 아래 꿰어 맞춰야지

>창밖은 보슬비가 내리사랑을 속삭인다.

>-------------------

>

>

>

>까치  

>               이재관

>

>

>넘어져봤니 응급실에 가봤니

>눈 뜨니 병실,

>백색이 편했다

>땅만큼 큰 종이 큰 프린터가 있다면

>구름의 주름 하나 빼지 않고

>단번에 복사할 수 있을 텐데

>마른 잎 찬바람 찍어

>무엇을 그리 베껴 쓰느냐

>억새야

>

>까악 깍

>나는 흰 종이쪽지 토너 부스러기

>엎드려 배에 복사해둔

>울긋불긋 꿈들아

>깨어나면 간 데 없어

>아무 때나 운다

>울고 싶을 때 운다.

>-----------------

>

>

>

>

>낙엽  

>              이재관

>

>

>천지현황(天地玄黃)이 아니었다.

>봄여름 하늘 향해 팔 벌리고 있었기에

>석양 꽃구름 무지개  

>손바닥마다 예쁘게 복사되었다.

>

>하늘의 기(氣) 고이 감아쥐고

>비탈 골짜기 가리지 않아  

>온몸으로 덮고 싶은 게다.

>복사판이긴 하지만  

>사랑으로 가슴에 프린트 했으니

>맥없는 이 땅  

>색칠을 해주고 싶은 게다.

>

>쌓이고 눌린 온몸으로 덧칠하다가

>마른 손 종내 흙 되는 줄 모르니

>가을비 유난히 진하다.

>하늘과 땅도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

>

>

>* 월간 [한비문학]이 1년에 한번 공모하여 1인에게 수여하는 한비작가상(제2회)을 제가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15편을 제출했는데 비교적 단순하고 짧은 시들이 선정되었습니다. 대구지방의 원로급 시인들이 심사를 맡아 당선작이 너무 얌전하다(튀지 않는다)는 평을 듣기도 하지만, 저로선 감지덕지, 축하해주세요. 수상소감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

>

>'한비 작가상' 수상 소감

>                              이재관

>

>내 쪽방은 늘 와글와글 데모대가 진을 치고 있다. 책상, 책장, 컴퓨터 파일, 바닥에 던져진 작품들이 나를 빤히 보면서 존재의 의미에 대해 항의한다. 일일이 잉태의 배경과 詩作 메모를 적어두었다가 말해주고 싶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나는  지나치게 작가중심, 話者중심의 세계에 안주해온 것이 아닐까. 그런 뜻에서 이번에 상을 받는 건 작가가 아닌 작품이라 생각하고 나는 머리 숙여 위로와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매에는 장사 없다. 작가에겐 자기 작품만큼 무서운 매가 없다. 어디선가 울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여 받아쓰고 내 싸인을 넣을 뿐이지만 부족한 건 모두 내 탓, 만일 즐거움과 영광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건 작품의 타고난 복일 게다. 나는 튜브가 하나뿐인 낡은 만년필, 로열블루 색 잉크를 좋아하지만 다른 잉크를 넣어야 할 때마다 몸부림쳐 짜내며 당황한다. 진달래, 바이올렛, 에메랄드 바다, 영혼의 색채, 개구쟁이처럼 손가락만 적시고 정작 써지는 건 퍼렇게 멍든 노래 같은 것, 부끄럽고 두렵다. 한번 세척으로 싹 씻어지는 진짜 생수를 만들어 파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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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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