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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선생의 '기(器)'자 화두를 받아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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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23 20:44 조회 10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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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정국의 지루함을 견디다 못한 동포선생,

이제 '기(器)'자 화두를 틀고

참선에 드신 듯.

일필휘지로 한 글자를

보내왔다.


<<논어>>에 '군자불기(君子不器)'란 말이 나온다.

'군자는 한 가지 그릇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밥공기도 그릇이요, 주전자도 그릇이다.

밥공기에 커피를 담아 마실 수 없고

주전자에 반찬을 담아 먹을 수 없다.

그런 그릇의 기능처럼

한정될 수 없는 것이 군자의 '그릇됨'이다.

그래서

너도 나도 군자인 척 하고 살지만

실은 군자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동포선생은

몇 줄 글로

그릇과 가마를 논했다.

"찌그러진 그릇이 온전한 그릇을 샘내서

심통부린다"는 것이 결론이다.

누가 '찌그러진 그릇'이고

누가 '온전한 그릇'인지

동포선생의 마음 속에

들어가보지 않은 이상

알 수가 있으랴.


지금 세상에

누가  '찌그러진 그릇'이고

누가 '온전한 그릇'이란 말인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손가락질하는 '그들'인가,

아니면,

'어리석은' 무리들이 '추앙하는'

'그들'이란 말인가.


지금 우리 중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성난 군중들로부터 돌팔매질 당하는

'그들'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 '그들'이

과연 군자들인가,

아니면 '온전한 그릇들'인가.

아니면 '찌그러진 그릇들'인가.


성난 군중들은

지금 누굴 향해

돌팔매질을 하는가.

진짜로 '죽여야할 놈들'을 향해

팔매질을 하는가.

아니면

모두들 달려 들어

불쌍한 뱀을 밟아 죽이면서

야릇한 쾌감에

몸을 떨던

어린 시절의

씁쓸한 추억들을

다시금 되새기고 있는가.  

놓아 두어도 어차피

몸을 비틀며 죽어갈

불쌍한 뱀을

그 악동들은 한사코

돌로 짓이겨 버리곤 했다.

그러면서

전신을 감싸는 쾌감에

부르르 떨던 것이었다.


아무런 힘도 없는 그것을,

그 생김새와 모양이 결코 내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그 이유만으로

잔인한 쾌감을 탐하면서

돌을 던지던 것이었다.


그건 비겁함이었다.

진짜로 '힘 있는' 교활에 대해선

침묵하고

비실거리던 그들이

떼로 뭉치니

돌을 들 용기를 내는 것이었다.

손쉬운 죽음의 향연을 통해

그들은 자신들의 '살아있음'을

만끽하는 것이었다.


비겁함.

부끄러움.


아,

언제나 되어야

우리가

깨어있는 이성과 의식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짧은 생을

향유할 수 있을지.


매화꽃 떨구던

칼바람이

훈풍으로 바뀐 지금

아지랑이 너울대는 속으로

동포선생의 '기(器)'자 화두가

미친 듯 춤을 추는

봄날의 오후다.


3. 23.


백규


2004-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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