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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참 어렵도다!-<한국문학사> 수강 학생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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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24 04:19 조회 14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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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참 어렵도다!-<한국문학사> 수강 학생들에게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하지만, 독후감 쓰기는 싫어한다. 마찬가지로 여행을 좋아하지만, 여행기를 쓰기는 싫어한다. 내게 책이나 여행지는 읽어내야 할 텍스트라는 점에서 같다. 귀한 시간과 돈을 써가며 가는 여행이니 눈 감고 갈 수는 없다. 짧은 인생에 언제 이렇게 맘에 맞는 친구들과 쉽지 않은 곳을 다시 올 수 있을까? 그러니 차창 밖으로 전개되는 경치들을 졸려도 눈 부릅뜨고 세세히 보면서 느낄 일이다.


마찬가지로 돈 주고 산 책들을, 혹은 빌린 책들을 그냥 내팽개쳐 두는 것처럼 미안하고 속상한 일도 없다. ‘피 같은’ 돈을 주고 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책을 쓴 사람들의 꿈과 노력을 생각하면 읽어주지 않는 일이 흡사 죄를 짓는 것 같기 때문이다. 책을 펴들고 그 책 속에 참하게 앉아 내 눈길을 기다리는 저자와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는 의무감. 늘 그 의무감이 나를 초조하게 한다.


몇 해 전, 나는 큰 맘 먹고 유럽의 20여 나라를 5개월여에 걸쳐 자동차로 돌았다. 굳은 결심을 하고 매일 저녁 숙소에서 사진을 정리하고 여행기를 썼다. 그 덕에 여행을 끝나고 나서 제법 그럴싸한 여행기를 어느 출판사에서 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뒤로는 여행을 하면서도 여행기를 쓰지 못한다. 타고난 게으름으로부터 본격적인 지배를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행에 나서도 이젠 겨우 그날그날 카메라 속의 사진들만 꺼내어 컴퓨터에 옮길 뿐, 기록을 남기지 못한다. 하루 이틀만 지나면 여행지의 기억은 가물가물해지고, 글을 쓰겠다는 열정도 식어간다. 그러면 끝내 글은 쓰지 못하고 만다. 글이 남지 않으면 여행지의 추억도 빛바랜 화첩마냥 기억의 저편으로 가물가물 사라진다. 옛 어른들은 말씀하셨다. “총명이 무딘 붓끝만 같지 못하다!”고. 그렇다. 역사에 자취를 남긴 인물들은 대개 자신의 걸음걸음을 잘 기록한 분들이다. 그러니, 나는 결코 그런 분들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할 존재임을 비로소 깨닫고 우울해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학술답사 차 며칠간 강의실을 떠나게 되었다. 부득이 답사를 떠나지 못하는 친구들에겐 E.H.카아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은 다음 독후감을 써내도록 했고, 답사에 나선 친구들에겐 기행문을 써내도록 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책과 여행지는 ‘읽어야 할 텍스트’라는 점에서 같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답사에 참여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지적인 여행’을 떠날 것을 강요한 셈이고, 답사에 참여한 학생들에겐 책을 읽듯 여행지를 꼼꼼히 살필 것을 강요한 셈이다. 학생들 모두 똘똘하니, 내 의도를 쉽게 간파했으리라. 나는 그 독후감과 기행문들을 받아 꼼꼼히 읽었다. 과연 그들은 자신들이 만난 텍스트로부터 무엇을 발견하고 느꼈을까. 자신들의 느낌이나 깨달음을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하게 갈무리해 놓았을까. 글들을 읽으면서 그 점이 궁금했고, 아쉬웠다. 그들의 글을 통해 그 시절의 내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을 가졌다면, 그들의 글이 좋았다는 것인지 그 반대인지 나도 헛갈리는 지금이다.


*약속에 따라, 좋은 글을 쓴 학생들에게 책 선물[<<풀어읽는 우리 노래문학>>, 논형출판사]을 하겠습니다. 해당 학생들[신가연, 김보람, 임민주, 김선민, 박요돈, 이동훈, 김재광, 이수빈, 최정민, 노희석, 이승화]은 틈 날 때 백규 연구실[조만식 기념관 609호]에 들르세요. 단 6월 25일까지!


2011-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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