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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성리학에 대한 저의 의견입니다. 교수님의 지도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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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24 04:37 조회 16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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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성,


답변이 늦어져서 미안하네.

연말에 이것저것 정리하느라, 서옥의 관리에 좀 소홀했었네.

참으로 좋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군. 늘 자네의 예리하고 도저(到底)한 학문적 물음에 감탄하는 때가 많네. 앞으로도 그런 자세를 견지해 주기 바라네.


공자를 비롯한 선성(先聖)들이 던진 가르침의 본질이야 말할 것도 없이 당대에 마주친 문제들의 해결과 함께 인간이 걸어야 할 항구적이고 보편적인 방향을 뭉뚱그려 제시하는 데 있었겠지. 그러다 보니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안들에서는 지극히 평범하기도 하고, 얼핏 보기에 단편적인 듯한 점들도 없지 않으리라 보네. 그러나 그것들을지키는 것이 그리 수월한 일만은 아니었을 거야. 어쨌든 그 분들이 당대의 어려움에 직면하여 제시한 길은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고, 후대의 현인(賢人) 학자들에 의해 해석, 재해석, 재재해석되면서 분명한 논리적 체계를 갖추게 되었으며, 결국 당당한 학문으로 성립될 수 있었던 거지. 경우에 따라 '논리를 위한 논리' , '공리공담' 혹은 '탁상공론'으로 빗나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했지만, 그런 것들이 그 학문의 본질이나 가치를 가릴 수는 없겠지. 어차피 인간은 자신의 시대를 살 수밖에 없고, 자신의 이해에 투철할 수밖에 없으므로, 어느 이념이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닌 존재임을 잊지 말게. 지금 세상에 날뛰는 온갖 이론가들의 언설(言說)들을 가만히 뜯어보면, 근본은 자기자신의 이익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네. 어느 시대나 인간은 자신의 행위를 보호하려는 욕망이 앞서고, 그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한 명분을 이전 시대의 권위있는 학설이나 언급들로부터 찾아내려는 욕구를 갖고 있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일세. 다만 그런 욕구로부터 나온 각종 논리들이 가급적 많은 사람들의 그것과 들어 맞을 경우[이를테면 상대적인 차원에서 큰 보편성을 견지한다면] 오래도록 생명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지. 조선시대를 지배한 이데올로기로서의 성리학이나 유교도 따지고 보면 절대적인 힘을 발휘했던 시기와 힘을 상실해가던 시기가 극명하게 대비되지 않던가?

퇴계나 율곡, 고봉 등도 모두 자신의 시대를 살다 간 최고의 현인들이었으나, 시대의 한계를 완벽하게 탈피할 수는 없었겠지. 그들이 비록 최고봉의 학자들이었으나, 같은 사안을 두고 긴 세월동안 논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바로 그런 점을 시사한다고 보아야 할 거야. 그 분들의 논저를 진지하게 읽어가면서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성과 함께 시대의 한계까지 읽어내려고 하는 것이 공부하는 우리의 자세가 아닌가 하네. 이 분야의 공부를 좀 더 심화시키기 위해 다음과 같은 논문을 우선 읽어주기 바라네.


1. 오종일, 성리학 형성의 연원에 대한 고찰, <<유교사상연구>> Vol.4, No.1, 한국유교학회, 1992.

2. 유권종, 유교 심학(心學)의 맥락 형성에 관한 연구, <<철학탐구>> 28, 중앙대 중앙철학연구소, 2010.

3. 유권종, 퇴계와 다산의 심성론 비교, <<한국의 철학>> 33, 경북대 퇴계연구소, 2003.

4. 임종진, 퇴계사상의 유학사적 좌표, <<퇴계학과 유교문화>> 41, 경북대 퇴계연구소, 2007.


이런 논문들을 정독하면서 유학, 특히 한국의 유학이 어떤 바탕 위에서 전개되었는지, 선현들이 갖고 있던 견해들의 같고 다른 점들은 무엇이었는지를 이해해 주기 바라네. 그런 다음 깨달음을 얻게 되거나, 또 다른 문제의식이 생길 경우 그것들을 이곳에 올려주기 바라네.

좋은 글, 고맙네.

더욱 정진하게.


      2012. 12. 23.


  백규




>저번 학기에 한국문학사를 들으면서 교수님께 유교와 성리학의 차이가 무엇인지 질문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 이후 조금이라도 무지를 떨치고자 기초적인 수준의 한국철학을 공부해보았습니다. 그 결과 저는 러프하게 표현하자면 "성리학은 참 된 유교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본래 유학은 전국시대의 혼란 속에서 "과연 이러한 혼란을 끝내고 백성들을 잘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에서 출발한 철학으로, 제가 막연히 생각했던 형이상학적 철학이 아닌 현실주의적 학문이었습니다.  

>공자에 관한 일화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염유와의 대화였습니다. 염유가 백성에게 가장 먼저 해주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묻자 공자가 제일 먼저 "배불리 먹여라(부유하게 만들어라)" 그 뒤에 가서야 "가르치라"고 답한 일화 말입니다.

>이처럼 공자의 사상은 현실과 유리된 어떤 높은 차원의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나로부터 시작하여 결국 세상을 잘 다스리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는 것이 제가 받은 느김이었습니다.

>하지만 천하가 통일되고 송대에 와서는 혼란이 진정되고 왕권을 공고히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항상성을 보편, 항구, 절대적인 지배 논리가 필요했겠지요. 그점에서 주희는 '리'를 절대적 진리로 내세울 필요가 있었다고 봅니다.

>물론 주희 역시 중용과 같은 텍스트에서 시중이나 적중과 같이 '그때 그곳에 알맞음'이 중요함을 언급하기 했지만, 이미 성리학은 유학이 지닌 변통성, 현실성을 잃고 교조화 된 철학이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물론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 맹자의 계통을 이어 인간 본연의 긍정성을 인정하고, 그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려는 성현들의 노력은 가치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퇴계와 같이 학문에 대한 그 높은 자세만으로도 절로 고개가 수그려지도록 만드는 분들이 존재했지요.

>하지만 퇴계의 경우도 기대승과의 4단7정 논쟁을 볼때, 지나치게 '리'의 절대성에 얽매인 나머지 많이 경직된 논리를 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백성의 하늘은 밥'이라 말씀하신 이이가 전술한 공자의 고사를 떠올리게 하더군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세계란 무엇인가' 혹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철학적 고찰의 가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때로는 현실과 유리된 것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고결한 철학이라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시조 중 '강호가도'의 경우 -물론 낚시광인 저로서는 자연 속의 그 호연지기를 동경하지 않는 바는 아닙니다만- 대부분의 작품에 큰 공감이 들지 않습니다. 물론 당쟁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은둔한 경우가 있더라 하더라도 그들이 말하는 '명철보신'의 논리가 진정한 선비가 내세울만한 논리인가 하는 분노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산께서 명철보신이라는 말을 재해석 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들이 아무리 강호에서 '진정한 가치'에 대해 외쳐본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사림들이 내세운 '처사'도 멋진 인간상이긴 하지만, 반대 속에서도 끊임 없이 벼슬로 나아가 무엇인가 변혁해보려한 이이같은 분이 진짜 선비가 아닐까요.

>말이 길어지니 잡스러워 졌습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무의미에 가까워 지는 성리학의 경직된 -또 무용한 논쟁들, 국장을 3년을 치르든 3일을 치르든 백성들에게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이런 것들이 과연 공자가 원한 유학의 참모습일까요? 공자가 이기일원론이니 이원론이니 논쟁하는 조선의 선비들을 옳다고 여겼을까요?

>

>추신 : 오늘 제가 엉뚱한 질문을 해서 학우들에게 시조가사론에 대한 말씀을 못 하셨는데, 한 가지 건의를 드리자면 -비록 한국문학사 시간에 다루어지긴 하지만- 시조가사론 시간에도 특정 작품을 가르쳐 주실 때 비슷한 시기에 나온 비슷한 성격의 다 장르를 함께 언급해주시면 후배들이 이해가 빨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예를 들어 거창가를 할 때 다산의 한시를 -가렴주구를 못 이겨 스스로 남성을 잘라버렸다는 남자의 이야기는 정말 눈물 없이 볼 수가 없더군요- 언급해주시는 식으로 말입니다.


201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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