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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4월은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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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23 20:48 조회 10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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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선생께


음악 '4월'로 시작하여

이문구의 소설을 거쳐

떼제베로 달리는

선생의 현실의식

그 현란함이여


늘 속아만 살아온

못난 자화상

천형처럼 끌어안고 살아온

우리 모두의 어리석음

매섭게 질타하는

그 칼날같은 매움이여


그러나

지금 당장 우리에겐

얼음장 녹여줄

따스한 인간미 한 조각

너그러운 마음씨가

진정으로 필요한 걸요?


4. 10.


백규



>   4월은 희망

>

> 음악을 사랑하는 골수 매니아는 알겠지만 나는 해마다 이쯤이면 불멸의 명곡인 10분짜리의 긴 곡 DEEP PURPLE의 APRIL를 숙명처럼 듣는다. 이 음악을 들어보면 활화산 같은 힘이 솟아나는데 그들은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성공한 곳은 미국이었다. 70년대 록뮤직을 대변해온 그들은 10명이 4기에 걸쳐 멤버가 바뀌면서 이젠 우리나이로 대부분 환갑을 넘긴 전설적 그룹이 되었다.

> 오르간으로 시작해 일렉트릭 기타의 크래시컬한 사운드로 연결되는 '사월'. 처음엔 서정적이다가 곡 중반부터는 격랑의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듯 춤을 추는데, 어쩌면 지금의 우리 나라 정치사와 느낌이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된다.

> 고인이 되신 작가 이문구 선생은 '내 몸은 너무 오래 서있거나 걸어왔다' 소설 첫머리에서 뚝뚝 떨어지는 육필로 '그래라. 누가 말려. 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 좋다 이거여.'라고 적고 있다. 어쩌면 그 말은 지금의 어수선한 정쟁의 모습을 압축해 놓은 듯한데 유행가 마디에서 패러디(?)한 말치고는 절묘한 조화로 밖에 다른 생각이 나질 않는다.

> 그렇다면 상행선은 좋은 것이고 하행선은 나쁘단 말인가 아닐 것이다. 이문구 선생은 작품 전개상 삶이 심드렁하여 '늬덜끼리 해봐' 하는 푸념 섞인 말로 내뱉은 말일 것이다. 다시 문장을 잘라본다. 상행선 종착지는 서울일 것이고, 하행선 종착지는 부산과 목포일 것인데, 우린 여기에서 서울은 그만두고 부산과 목포만 놓고 이야기해도 허연 밤을 지샐 것이다.

> 국민의 세금인, 혈세로 프랑스 기술인 떼제베 기차가 서울에서 한나절도 안 되는 부산과 목포땅을 왔다갔다 움직이는 초고속 시대에, 이 땅에 태어남을 진정 감사해야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편으로는 정치판이 뒤죽박죽이니 울화통이 치밀어 올라 폭발 일보직전이다.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거늘 유독 변하지 않는 것은 삼백명도 안 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여의도 집단이 있기에 하는 말이다.

> 평소 느림의 미학이 좋은 거라고 예찬하는 사람이지만 이들의 형태는 결코 느림의 미학이 좋을 순 없다. 그렇다고 전형적 한국의 트레이드마크인 빨리빨리를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앞으로 전진이 없고, 진보라는 지극히 평범한 논리를 그들만이 새까맣게 잊어 먹었는지 변화의 표시가 없으니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 도대체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의 연속이데, 이땅에 사는 국민의 가슴팍이 다 타들어 가는 것을 진정 모르고 있단 말인가. 백번 이해 하려해도 도대체 그들의 속내는 확인할 수 없고 이문구 선생 말대로 '그래라. 누가 말려. 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 좋다 이거여.' 이렇게 말하긴 너무 억울하지 않는가.

> 어느 경우든 이 땅에서 벌어지는 작금의 현실은 국민을 두 번 죽이는 일인데 뻔히 상황을 인지하면서도 고집을 앞세우고 나라를 이 꼴로 만든 그들에게 한편으로는 연민의 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해도 똑같은 밥먹고 이 땅의 정기를 받아 살아가거늘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다면 분명 사정이 있을텐데 도무지 그 사정이라는 것이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으니 국민들은 답답하기만 하다.

>

>농삿꾼의 타는 속을 적시려는지 얄밉도록 작게 내린 밤비가 그치자 메말랐던 큰 땅은 그나마 생기가 돋아나고 작은 풀들이 크게 부풀어 올라오는데, 새봄을 알기나 하는지 평소 친하지도 않던 개들이 정분이 났는지 우르르 몰려다니며 꼬리치고 다니다가 어쩐 일인지 요즘엔 마주 보며 울부짖고 있다.

> 여기에 맞닿은 낮닭 울음소리도 합세하고 있는데, 지난겨울 눈 덮인 봉분에 칼바람이 부딪혀 새파란 하늘로 눈보라가 날리더니 봄마다 새 풀 돋는 무덤들은 연두색으로 빛나거늘 어찌하여 그들만이 역사를 인식하지 못하는 틀에 갇혀 나오지 못하고 '난 그런 거 몰라' 하면서 세월을 잡수시고 있는지 정말 한심스럽기만 하다. 이런걸 쇠귀에 경읽기라고나 할까.

> 수년전 타의에 의해 끊어졌다가 어렵게 이은 뱃속 창자의 꿈틀거림이 출렁거린다. 거기엔 고스란한 아픔의 소리가 있는데, 이는 마음의 소리이니 들릴 리 없다. 시간은 아름다움을 퇴색시키지만 그 아름다움을 지키는 것은 다른 것도 아닌 사람이다. 왜 사람은 아름다워야 하는가. 북은 소가 죽어 남긴 가죽의 소리이고 피리는 청정한 대숲에서 노닐다가 꺾여 바람으로 이뤄내는 소리이다. 징은 대장간의 풀무질과 무수히 얻어맞은 쇠의 소리고 목탁은 구원을 넘어선 목수의 칼끝에서 나온 나무의 소리이다. 소리, 소리의 근본은 만물을 넘어서지 못하거늘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사람이라고 그 소리가 들릴까. 어쩌면 빛이 내 몸을 관통해 파편으로 쪼개지는 날 그 소리는 비로소 장엄하게 울려 퍼질지도 모르겠다.

> 젖은 숲이 향기를 토해내고 마른 들판의 버들강아지 줄기가 사람의 얼굴을 웃게 만드는 화려한 봄날이 이어진다. 여의도 샛강에서 시작했던 돌개바람은 광화문 어귀에서 폭풍처럼 휘몰아치다가 이젠 그친 상태다. 하지만 이 바람은 잘 간수해야 하는데, 다른 방법 없이 어느 정도는 멈춰줘야 한다. 바람이 세다고 불이 세지지 않듯이 작은 바람을 모아야 큰바람이 된다. 불을 들들 볶아선 역효과가 있을 뿐이다.

> 불씨는 꺼지지 않게 조심 또 조심하면서 간직해야 하는데, 그건 불씨를 소유한 사람이 불과 더 가깝기 때문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또 하나는 악의에 찬 무리들이 그 불씨를 역이용 하려하기 때문이다. 정신을 곧추세우고 정신을 꼭 붙들어 매어놓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이 해야만 하는 책임감이다. 쌍끌이 그물로 한번에 고기를 다 잡으면 씨가 없어질 것으로 생각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남길 것은 남기고 잡을 건 잡아야한다. 요즘 여의도에서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괴변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 바람 따라 흘러가다 보면 마음은 답답할 것이다.

> 짚어본다.

> 직업이 없어서 시간이나 때우려고 광화문에 나왔을 거라구. 아님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을 거라구. 확실하지 않기에 직답은 어려운데 분명 그게 아니다. 역사를 인식하지 못하는 세력이 드리운 어둠을 밝히기 위해서 광장에 모였던 것이며, 소중히 지켜야 할 무언가가 있기에 나섰던 거다. 그 만은 사람들은 대통령의 직권이 정지된 것을 나무란다거나 대통령이 예뻐보여 나선게 아니였다. 그들은 여의도에서 행한 절차를 꾸짓는 것이었다.

> 우린 역사라는 단어 앞에서 겸허해야 한다. 그걸 인정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환히 알지 않는가. 집착, 그것도 과감히 버려야 한다. 그렇다고 죽지는 마라. 다만 죽기를 각오하고, 돌팔매를 맞을 각오로 광화문 네거리에서 진실로 반성한다면 그땐 모르겠다. 죽지 마라. 죽으면 육신이 없어지고 마음도 없어져 남는 건 허무뿐이다. 기회는 언제든지 있는 것이 아니다.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힘찬 연어처럼 참아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도 헤아려 달라는 말이다.

> 처음엔 그들이 우리를 유혹했다. 분명 그 유혹에 넘어간 것도 우리였다. 그리곤 좌절했었다. 그러나 이젠 더 좌절할 것도 없다. 다 자업자득이다.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했지만 이 상황을 어찌할 건가. 무지랭이여서 그런 건 아니고 지금의 상황은 참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없다. 그 다음엔 분명 극복될 것이다. 아니 꼭 극복해야 한다.

> 선인들이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 여기에서 주저앉으면 국제적으로 미아가 된다. 그보다 '우리'라는 틀이 무너지면 안 된다. 우린 언제나 슬기로운 민족이었다. 다가온 봄을 끝장낼 기세로 폭설이 내렸었지만 그래도 겨우내 마른 줄기들은 이 눈 녹은 물을 끌어올려 파랗게 새순을 틔울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바라는 걸 여의도 집단만 왜 모르는가. 그래도 사월은 희망이다.

>

>동포 서예문화연구실

>


2004-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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