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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성리학과 남당 한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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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23 15:32 조회 38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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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성리학과 남당 한원진



    누구나 그렇겠지만 신유학을 집대성했다는 주희 또한 때와 장소, 상황에 따라 하는 말이 다른 경우가 허다하게 발견된다.


    예컨대 이(理)와 기(氣)의 관계에 대해 주희는 어떤 곳에서는 "본래 선후가  없다"고 했다가 다른 곳에서는 "이가 앞서고 기가 뒤따른다"고 하고 있다. 또 다른 곳에는 "기가 앞서고 이가 뒤따른다"고 하기도 한다.


    흔히 조선왕조를 주희에게서 비롯된 성리학 절대 이데올로기 사회라 하지만  이러한 체제가 본격적으로 구현되기 시작한 것은 퇴계와 율곡을 거쳐  우암  송시열에 와서야 어느 정도 가능했다.


    그것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것이 주희에 대한 조선 지식인들의 이해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주희가 직접 쓴 글은 「주자대전」(朱子大全)으로 정리가 돼 있고, 그가 제자들에게 강설한 내용은 제자들에 의해 「주자어류」(朱子語類)로 집대성됐다.


    하지만 주자철학에 내재한 고도의 사변성은 고사하고 분량이  워낙  방대한데다 출판비용 또한 만만치 않아 조선왕조는 건국과 동시에 통치이념으로 성리학을  표방했음에도 「주자대전」은 중종 38년(1543)에야 간행되었다.


    퇴계만 해도 그 스스로가 남긴 글을 보면 마흔 살이 넘어서야 비로소  「주자대전」을 읽었다고 했다. 그러니 주자철학은 퇴계 이후가 되어서야 그나마 이해의  깊이가 본격화됐다고 할 수 있다.


    송시열이 조선 사상사에서 중대한 분기점을 이루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주자의 말이라면 어느 것이나 당시 조선의 시세에 적용될 수 있다는 성리학 근본주의자였던 우암에 이르러 주희철학 자체에 내재된 모순이 비로소 감지되기 때문이다.


    조선 지식인들이 느낀 주자철학의 가장 큰 문제는 같은 내용을 얘기하고 있음에도 이(理)와 기(氣)의 관계처럼, 주자 스스로도 젊은 시절에 한 말과  만년에  남긴 말이 다르고, 문맥에 따라 다른 경우가 꽤 많다는 점이었다.


    이에 우암은 어떻게든 이 문제를 정리하지 않을 수 없어 주자의 말 가운데 서로 다른 조목만을 따로 정리해 그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가하는 작업에 손을 댔다.  하지만 이 작업은 미완성으로 끝났다.


    우암은 제자들에게 이 작업을 이으라고 했으나 제자의 제자인 남당(南塘)  한원진(韓元震. 1682-1751)에 이르러서야 완성을 보았다. 우암의 제자 중 권상하라는 이가 있었는데 남당은 그 문하생이었다. 남당은 우암이 30개 조항만 지적한 주희 말의 상호모순된 항목을 479개 항목으로 정리해냈다.


    1741년 12월에 완성된 「주자언론동이고」(朱子言論同異考)가  그것이다.  굳이 옮기자면 '주자가 말하고 논한 것 중 서로 같고 다름에 대한 고찰' 정도가 된다.


    이 저작에 대한 당대 평가는 "이 책이 나옴으로써 주자의 초년과 만년의 견해가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해졌다"는 「조선왕조실록」 언급에서 확인된다.


    이처럼 방대한 항목에 걸쳐 주희가 말한 내용에 서로 충돌이 있음을 가려냈다는 그것만으로도 남당이 얼마나 「주자대전」이나 「주자어류」를 치밀하게 분석했는지가 잘 드러난다.


    그렇다면 한원진은 이러한 충돌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아주 많은 경우 "언뜻 보아 모순된 듯하지만 문맥으로 보아 같은 뜻이다"는 식으로 주희를 옹호하는가 하면, 어떤 때는 제자나 판각의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 주희는 어떤 경우에서건 절대 성인이 된다.


    그렇다면 남당은 이러한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 명백한 주희 스스로의 모순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주자언론동이고」 서문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는  나면서부터 아는 분이니 초년의 말이나 만년의 말이나 가릴 것이 없지만, 주자는 배워서 안  분이므로 초년설과 만년설 사이에 같고 다름이 없을 수 없다"

    이러한 언급을 통해 남당은 주자도 한 때는 평범한 인간이었다는 점을 상기시킴으로써 주자를 옹호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나아가 주자의 견해가 명백히 모순되는 경우에는 만년에 남긴 말을 '주자철학'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주자언론동이고」는 주희 혹은 그의 성리학이 어떻게 조선왕조 지배층에서 어떠한 '투쟁'을 거쳐 절대 이데올로기화돼 가며, 그 이해의 폭이 어떤  과정을  거쳐 넓어졌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문헌이다.


    최근 숭실대 곽신환 교수가 제자들과 함께 완역한 「주자언론동이고」(소명출판)를 주목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2002-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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