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국민국가 일본이 만든 `고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23 15:33 조회 396회 댓글 0건본문
<책> 국민국가 일본이 만든 '고전'
많은 이가 이렇게 생각한다. 「심청전」「춘향전」이 조선시대 이래 줄곧 '한국문학의 바이블'이었다고. 또 많은 이가 당연하게 여긴다. 석굴암이 8세기 후반 신라시대 초창 이래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품이었다고.
하지만 이러한 통념이 우리 뇌리에 확고하게 자리잡은 것은 그 역사가 길어야 1세기 남짓하며, 다른 분야의 '한국적 상징'들 또한 사정이 다를 바 없다.
석굴암만 해도, 그것이 조선적 전통을 상징하는 '문화재'로 발견된 것은 아무리 길게 잡아야 100년이다. 1902년 6월 27일 일본의 건축학자인 세키노 타다시(關野貞)가 한반도에 상륙했다.
부산에 내려 경주, 부여, 공주를 거쳐 평양을 돌아본 세키노는 이런 경험과 이후 조선총독부 고적조사연구회 활동을 발판으로 '조선미술사'를 구축했는데, 석굴암은 세키노에 와서야 비로소 '조선 미술품'으로 격상된다.
그렇다면 그 이전 석굴암은 무엇이었을까? 몇몇 승려나 시인.묵객이 잠시 둘러보거나 무당들이 돼지머리 올려놓고 굿하는 장소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당연히 궁금증이 생겨난다. 도대체 우리가 알고 있는 이러한 상징물들은 언제, 누가, 무슨 목적으로 한국적 전통, 한국적 고전으로 재발견했는가?
유감스럽게도 여기에 주목한 국내 연구는 제로에 가깝다. 일본의 경우를 보자.
「고지키」(古事記)니 「니혼쇼키」(日本書紀),「겐지이야기」(源氏物語),「만요슈」(萬葉集), 「고킨와카슈」(古今和歌集)는 일본적 전통을 상징하는 고전 혹은 '정전'(canon)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러한 소위 '고전'이 '고전'으로 창출된(invented) 것은 일본이 근대국민국가로 본격 발돋움하는 1880년대 메이지(明治)시대에 와서였다. 이들 소위 고전이 그 이전에도 일부 계층에서 중시되기는 했으나, 국민국가(nation-state) 구축단계에 와서야 비로소 일본적 전통으로 그 위치가 탈바꿈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들을 고전으로 만들었는가?
일본문학 전공인 인하대 왕숙영 교수가 완역한 단행본 「창조된 고전」(소명출판) 집필자들인 하루오 시라네와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등은 국민국가 일본의 창출품이었다고 진단한다.
국민국가 일본은 대외적으로는 그 스스로를 다른 나라와 구별하는 한편 내적으로는 국가와 국민을 통합해야 했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은 말로만은 되지 않는다. 그것을 눈으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증거가 필요했다.
고전은 이러한 필요성에 따라 '국민문학'으로 급속도로 재발견되어 갔다.
유럽 리얼리즘 작가들에 필적하는 인물을 찾는 와중에서 매몰되다시피했던 사이카쿠가 일본적 리얼리즘 작가로 재발견됐고, 「겐지이야기」는 일본 국민문학에서 '세계문학'이 되기 위해 영어로 번역됐다.
셰익스피어와 그리스 비극이 서구에서는 '전통'이며 '자부심'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종래 일본에서 단순 '예능'에 지나지 않던 무대예술이 '국민문학'의 기념비적 존재로 인식되면서 마침내 그 지위가 예술(art)로 격상했다.
흔히 정치와는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하기 십상인 문학과 미학은 이처럼 국민국가 건설이라는 권력의 지상명령에 보조를 같이하며 일본적 전통을 창출했던 것이다.
지난 99년 일본 신요사(新曜社)에서 원서가 출간된 「창조된 고전」(INVENTING THE CLASSICS)은 문학이 만든 '국민국가 일본'을 폭로한다. 제목은 영국 출신 유대인 좌파 역사가 에릭 홉스봄이 제시한 개념에서 빌려왔다. 525쪽. 1만9천원.
2002-12-1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