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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옴) 빛날 고전-사라질 이야기, 역사가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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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23 16:49 조회 11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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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hani.co.kr 에 게재된 김헌 교수(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의 글


빛날 고전-사라질 이야기, 역사가 갈랐다

고전 오디세이 ① 역사가 만들어낸 고전의 비밀

  

» 고전 오디세이


그리스·로마 고전 ‘아르케’를 찾아서


몸소 보고 듣는 히스토리아(historia)


옛 그리스에 헤로도토스(기원전 484~425)라는 사람이 있었다.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진기한 유적과 낯선 풍경을 보고, 이방인들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일에 청춘을 다 바쳤다. 불혹의 나이에 아테네에 머물게 된 그의 곁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는 뛰어난 이야기꾼이었다. 이국땅에서 목격한 사실들과 수집한 증언들을 매끄럽게 엮어내어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그가 아테네를 떠나 이탈리아 남부 한 도시에 정착하였을 때,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터졌다.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격돌한 것이다. 거대한 페르시아 제국이 침략해 왔을 때, 두 도시국가는 그리스 동맹을 이끌며 위대한 승리를 일구었지만, 이젠 동맹의 틀을 깨고 갈라서서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다. 전쟁이 터진 그해(기원전 431년) 그는 <역사>(Historiae)를 쓰기 시작했다. “할리카르나소스에서 태어난 헤로도토스가 ‘직접 보고 들은 것’(historia)을 이제 제시하는 바(apodexis)이다. 이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시간에 의해 지워지지 않도록 하고, 그 엄청나고 놀라운 일들이 알려지지 않은 채 묻히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히스토리아’(historia)라고 했다. ‘본다’(horo)라는 동사에서 자라나온 말이다. 철학자들이 논리적으로 구성하는 추상적 담론(logos)이나 시인들이 상상력으로 그려내는 경이로운 이야기(muthos)와는 달리, 직접 보고 들은 것을 사실 그대로 기록한다는 히스토리아, 우리는 이 개념을 ‘역사’(歷史)라고 새긴다.


직접 보고 들은 고대 전쟁 기록한

헤로도토스 별명은 ‘거짓말쟁이’

역사 본질은 재구성된 ‘과거 사실’

  

» 빛날 고전-사라질 이야기, 역사가 갈랐다


역사(historia)는 진실인가? 허구인가?


역사는 구체적으로 ‘주어진 것’(data), 확인할 수 있도록 ‘놓여 있는 것’(posita)을 바탕으로 구성되기에 ‘사실’(facta)이라고 받아들여진다. 학교의 역사교육은 강한 힘을 가지고 역사를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게끔 사람들을 압도한다. 그러나 공인된(?) 역사교과서에 인쇄된 역사는 진정 사실일까? 역사기록이 사실들에 근거를 둔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역사의 진실성은 의심스럽다.


첫째, 역사가 바탕에 깔고 있는 사실들이란 누군가에 의해 선택된 것. 가령 어떤 한 시대에 100개의 사실이 일어났다는데, 5개의 사실만이 기록으로 남았다면, 95개의 사실들은 사라진 것이다. 기록에 남지 않아 시간의 흐름에 떠내려갔으니, 역사기록 속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누가 취사선택의 결정권을 쥐고 5개만을 남긴 것일까? 혹시 역사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아니라, 기록과 보전의 결정권을 쥔 그 사람들이 선택한 사실의 일부, 그래서 왜곡 부각된 사실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들의 선택과 기록의 바깥으로 밀려난 수많은 사실들이 오히려 역사적으로 더 의미가 있고, 그때를 더 잘 보여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둘째, 남아 있는 5개의 사실들을 두고도 그것을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이 다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의 진실성은 의심스럽다. 예를 들어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등 우리 시대를 대통령으로 살다 간 사람들에 대한 평가들이 심각하게 엇갈리고 부딪히는 장면을 보면서, ‘역사란 다분히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것은 아닐까?’라는 물음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직접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기록한다는 실증적인 정신으로 거대 제국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작은 도시국가들의 연맹 사이에 벌어진 전쟁을 기록했던 헤로도토스는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하지만 그의 히스토리아의 진실성도 의문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그도 어쨌든 사실들을 선택했을 테고, 선택된 사실에 해석을 담아냈을 것이다. 그는 인간들이 자신들의 한계를 넘어서 신이 정한 질서와 정의를 거스르는 무례함(hubris)을 범할 때, 불행을 겪는다고 믿었다. 그의 <역사>는 이런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선택된 내용과 해석으로 채워져 있다. 그렇게 그는 과거를 재구성하여 한편의 역사를 지어낸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역사의 아버지’라는 별명과 함께 ‘거짓말의 아버지’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헤로도토스만이 아니다. ‘사실’(fact)과 ‘조작’(fiction) 사이에서 맴돌고 있는 그 무엇이 바로 역사라며, ‘팩션’(faction)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스 문화에 압도당했던 로마인

모방·변용으로 새로운 문화 만들어

“세계 보편의 가치 만든 힘 찾을 것”


고전(古典)이 역사의 산물의 산물이라면…


고전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물을 수가 있다. 고전이란 거의 모든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거의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고전이 값있고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이해하고 끝까지 읽어내기란 여간해선 쉽지 않다는 뜻이겠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을 꼭 읽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가? 고전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정말 고전은 값진 것일까? 그런데 고전은 정말 인생에 있어서 값진 것이니 꼭 읽어야 한다고 역설하는 사람은 도대체 누군가?


고전은 분명히 역사의 어느 한 시점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만들어진 순간 곧바로 고전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세대를 이어가며 계속 읽어주고, 재해석하고 재생산하며 보전한 경우에만, 고전은 고전으로서 살아남았다. 지난 세월 속에 수많은 책들이 있었겠지만, 그 가운데 정말 아주 적은 수의 책들만이 지금까지 고전으로 남았고, 나머지 대부분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렸다. 따라서 하나의 책을 고전이 되게 하는 것은 다른 누가 아니라 바로 역사 자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역사의 선택을 받은 텍스트- 그것이 바로 고전이며, 그래서 고전은 역사의 산물이라고 말들 한다. 고전의 생명력은 특정 시대의 문제들에 깃든 보편성을 통찰하는 힘에서 비롯되며, 역사의 매순간에 새롭게 생겨나는 문제들에 대응하는 힘에서 확인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도대체 누군가? 역사가 그렇듯이, 고전이라는 것도 고전이게 하는 어떤 선택의 힘, 그 힘을 가진 어떤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이제 이어지는 몇 편의 글을 통해 우리는 옛 그리스에서 태어난 작품이 왜, 어떻게 고전이 되고, 그리스를 점령한 로마 속으로 이어져갔는지를 추적해보려고 한다. 역사적 추적 작업에서 아주 중요한 개념은 로마인들이 사용했던 ‘모방’(imitatio)과 ‘경쟁’(aemulatio)이다. 이 말은 서양 고전의 형성 과정을 이해하는 일종의 키워드다. 로마가 무력으로 그리스를 점령하였을 때, 로마는 높은 수준에 도달한 그리스의 문화에 깜짝 놀랐고 압도당했다. 로마는 그리스의 문화를 ‘모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겉모습만을 흉내 내는 답습이 아니라, 로마의 상황과 시대적 요구에 맞게 창조적으로 변용하는 노력이었으며, 그리스 문화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며 로마적인 것을 구축하려는 필사적인 ‘경쟁’의 일환이었다. 그 과정에서 서구 문화 전반을 지탱하는 그리스-로마 고전은 선택되고 창조되었다.


우리의 목적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이 보편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뻔한’ 주장을 되풀이하려는 것이 아니다. 고전을 통해 역사를 이끌어온 힘, 역사를 통해 고전을 만들어낸 힘의 진정한 정체가 무엇인지를, 그 힘이 만들어낸 세계가 어떤 것인지를 묻고 답을 새롭게 찾아보려는 데 있다. 어쩌면 우리는 지고한 가치로 값이 매겨진 서양의 오래된 고전들에 대해 뜻밖에 형편없는 값을 매기는 위험한(?) 서양고전학자가 될지도 모른다.


201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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