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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23 16:52 조회 11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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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면비염불서승  


郁面婢念佛西昇(욱면비염불서승)

○ 景德王代(경덕왕대)에 康州(강주)【지금 晋州(진주)다. 或(혹)은 剛州(강주)라고도 쓰니 그러면 지금 順安(순안)】의 善士(선사) 數十人(수십인)이 뜻을 西方(서방)에 求(구)하여 州境(주경)에 彌陀寺(미타사)를 創建(창건)하고 萬日(만일)을 期(기)하여 契(會)〔계(회)〕를 하였다. 때에 阿干(아간) 貴珍家(귀진가)에 郁面(욱면)이라 하는 한 婢子(비자)가 있어 그 主人(주인)을 따라 절에 와서 中庭(중정)에 서서 중을 따라 念佛(염불)하였다. 主人(주인)은 그가 일을 잘하지 아니함을 미워하여 매양 곡식 二碩(石)〔2석〕을 주어 하루저녁에 찧게 하였는데 婢(비)가 초저녁에 다 찧고 절에 와서 念佛(염불)하여【俗談(속담)에 「내 일 바뻐 한댁방아를 서두른다」함은, 아마 여기서 나온 것이다】밤낮으로 게을리 하지 아니하였다. 뜰 左右(좌우)에 긴 말뚝을 세우고 두 손바닥을 뚫어 노끈으로 꿰어 말뚝에 매이고 合掌(합장)하여 左右(좌우)로 흔들며 (스스로) 激勵(격려)하였다. 때에 空中(공중)에서 부르기를 郁面娘(욱면낭)은 堂(당)에 들어가 念佛(염불)하라 하였다. 寺衆(사중)이 듣고 婢(비)를 勸(권)하여 堂(당)에 들어가 例(예)에 따라 精進(정진)하게 하였다. 얼마 아니하여 天樂(천악)이 西(서)쪽에서 들려오더니 婢(비)가 솟아 屋樑(옥량)을 뚫고 나가 西行(서행)하여 郊外(교외)에 이르러 肉身(육신)을 버리고 眞身(佛身)〔진신(불신)〕으로 變(변)하여 蓮臺(연대)에 앉아 大光明(대광명)을 발하면서 천천히 가버리니 樂聲(악성)이 空中(공중)에서 그치지 아니하였다. 그 堂(당)에 지금도 구멍이 뚫어진 곳이 있다【以上(이상)은 鄕傳(향전)】. 僧傳(승전)에 依(의)하면 중 八珍(팔진)이란 자가 觀音(관음)의 現身(현신)으로 徒(도)를 結成(결성)하여 千名(1,000명)이 되매 두 패로 나누니 一(1)은 勞力(노력)이요 一(1)은 精修(정수)였다. 勞力徒中(노력도중)에 知事者(지사자)가 戒(계)를 얻지 못하여 畜生道(축생도)에 떨어져 浮石寺(부석사)의 소가 되어, 일찍이 經(경)을 싣고 가다가, 經力(경력)의 도움으로 阿干(아간) 貴珍(귀진)의 집의 婢(비)로 태어나서 郁面(욱면)이라고 이름하였다. 그가 일이 있어 下柯山(하가산)에 갔더니 꿈에 感動(감동)하여 드디어 道心(도심)을 발하였다. 阿干(아간)의 집은 惠宿法師(혜숙법사)가 일으킨 彌陀寺(미타사)에서 멀지 아니하였다. 阿干(아간)이 매양 그 절에 가서 念佛(염불)할 때 婢(비)도 따라가서 뜰에서 念佛(염불)하였다 云云(운운)한다. 이와같이 하기를 九年(9년), 乙未(을미) 正月二十一日(정월21일)에는 佛(불)에 禮拜(예배)하다가 屋梁(옥량)을 헤치고 다라나 小伯山(소백산)에 이르러 신 한짝을 떨어뜨렸으므로 그 땅에 菩提寺(보리사)를 짓고 또 山下(산하)에 이르러 肉身(육신)을 버렸으므로 그곳에 第二菩提寺(제2보리사)를 짓고 그 殿(전)을 榜(名)〔방(명)〕하여 勗面登天之殿(욱면등천지전)이라 하였다. 지붕에 뚫린 구멍이 十許圍(10허위)가 되었으되 暴雨(폭우)와 密雪(밀설)이 내려도 젖지 아니하였다. 그후 好事者(호사자)가 金塔一座(금탑1좌)를 模造(모조)하여 그 구멍을 막고 먼지를 받게 하여(?) 그 異跡(이적)을 記錄(기록)하였다. 지금도 榜(방)과 塔(탑)이 남아 있다. 勗面(욱면)이 간 후에 貴珍(귀진)은 또한 그 집이 異人(이인)이 寄生(기생)한 곳이라 하여 (집을) 喜捨(희사)하여 절을 삼고 法王寺(법왕사)라 하고 田(전)·民(민)을 바쳤더니, 오랜 후에 廢(폐)하여 丘墟(구허)가 되었다. 大師(대사) 懷鏡(회경)이 承宣(승선) 劉碩(유석), 小卿(소경) 李元長(이원장)과 같이 發願(발원)하여 절을 重建(중건)하니 鏡(경)은 친히 土木(토목)을 맡아 처음 材木(재목)을 나를 때 꿈에 老父(노부)가 麻屨(마구)와 葛屨(갈구) 각 한켜레씩을 주고 다시 古神社(고신사)에 가서 佛理(불리)로써 諭示(유시)하였으므로 祠側(사측)의 材木(재목)을 베어 내어 대개 五年(5년)만에 〔工事(공사)를〕 마치었다. 또 臧獲(장획)을 더 加(가)하여 東南(동남)의 名伽藍(명가람)으로 繁昌(번창)하니, 사람들이 鏡(경)으로써 貴珍(귀진)의 後身(후신)이라 하였다. 論評(논평)컨대 鄕中古傳(향중고전)에 依(의)하면 郁面(욱면)은 景德王代(경덕왕대)의 事實(사실)이라 하고 徵(징)【徵字(징자)는 아마 珍(진)인 듯 아래도 또한 같다】本傳(본전)에 依(의)하면 元和三年(원화3년) 戊子(무자) 哀莊王(애장왕) 때의 일이라 하였으니 景德(경덕) 以後(이후) 惠恭(혜공)·宣德(선덕)·元聖(원성)·昭聖(소성)·哀莊等(애장등) 五代(5대)를 〔歷年(역년)을〕 都合(도합)하면 六十餘年(60여년)이다. 徵(珍)〔징(진)〕은 먼저요 面(면)은 後(후)니, 先後(선후)가 鄕傳(향전)과 틀린다. 그러나 두 記事(기사)를 그대로 두어 疑問(의문)을 闕(궐)케 한다.

讚(찬)하노니 「西隣古寺(서린고사)에 佛燈(불등)이 밝았는데, 방아를 찧고 돌아와 禮拜(예배)하니, 밤은 二更(2경)이로다. 스스로 한 소래(염불)로 부처를 이루고자 손바닥을 뚫어 끈을 꿰니 形體(형체)를 잊었도다」.


▣ 각주  

☞ 西方淨土(極樂)〔서방정토(극락)〕

西方淨土(極樂)〔서방정토(극락)〕

☞ 徒(도)는 結社(결사:두레)·集團(집단)의 義(의)니, 花郞徒(화랑도)·香徒(향도)와 같은 것. 徒(도)는 結社(결사:두레)·集團(집단)의 義(의)니, 花郞徒(화랑도)·香徒(향도)와 같은 것

☞ 일을 맡아보는 자

☞ 佛經(불경)의 靈力(영력)

☞ 郁面(욱면)과 同音異寫(동음이사)

☞ 五寸(5촌)을 一圍(1위)라고 하나, 혹은 一抱(1포:한아름)를 이르기도 한다

☞大麻(대마)로 삼은 신

☞ 칡으로 삼은 신

☞ 奴(노)를 臧(장), 婢(비)를 獲(획) 즉 奴婢(노비)

☞ 貴珍(귀진)의 珍(진)의 誤記(오기)인 듯

☞ 唐憲宗年號(당헌종연호)로 新羅哀莊王九年(신라애장왕9년)(서기 八○八:808)에 당한다


2010-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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