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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결(口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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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23 17:54 조회 26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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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결은 ‘토(吐)’라고도 한다. 예컨대 “國之語音이 異乎中國야 與文字로 不相流通”(훈민정음)에 쓰인 ‘이·야·로·’ 등이다. 이들은 대부분 조사이거나 ‘하다’·‘이다’의 활용형이다.

한문에 구결을 다는 일을 ‘구결을 달다, 토를 달다, 현토(懸吐)하다, 현결(懸訣)하다.’라고 한다. 구결을 정확히 달려면 한문 문맥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옛날 한문 학습에서는 구결을 중시하였다.

구결의 표기방법은 위의 예와 같이 한글로 하는 방법과 한자를 차용하는 방법이 있었다. 구결은 처음부터 본문의 협주로 인쇄되는 일도 있으나, 보통 인쇄된 한문의 행간에 써넣기 때문에 차용된 한자는 획수를 최소한으로 줄인 약자로 표시되었다.

이러한 약자는 이두 표기 등에도 나타나지만 구결 표기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므로 구결문자라고 하는 일도 있다. 구결은 주로 문법적인 관계를 표시하는 형태들로서 문법사 연구의 자료가 되고, 한자를 차용한 표기는 문자사 연구의 자료가 되므로 국어사 연구의 중요한 대상이다.

한편, 구결은 유교와 불교의 경전에 대한 당대 학자들의 이해와 해석을 알려 주고 있는 점에서 유교와 불교의 역사 연구에도 이용될 수 있다.

구결과 토를 이와 같이 해석하여 동의어로 보는 것은 전통적인 개념이다. 15세기 중엽에 “무릇 책을 읽을 때에 우리말로써 구절을 끊는 것을 세속에서 토라고 한다.”(세종실록 10년 윤4월 기해, 1428년)라고 한 것이라든지, “임금이 구결을 정하다.”(원각경언해 첫머리)라고 한 기록이 그것을 말한다.

그런데 1974년 ≪구역인왕경 舊譯仁王經≫ 상권의 낙장이 발견되면서, 구결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제기되었다. 하한이 14세기라고 믿어지는 이 자료에는 15세기 이후의 문헌에서 보이는 구결 표기와 비슷하게, 인쇄된 한문의 행간에 약자로 표기된 묵서(墨書)가 나타난다.

그 묵서는 ① 행의 왼쪽에도 나타나고, ② 한자의 거의 모든 글자에 표기되며, ③ 한자가 아닌 점(點) 표기도 나타나는데, 구결이 행의 오른쪽에 한자로만 표기된 것과 다르다. 더욱이 구결이 표기된 원전은 음독을 하는 데 대하여 이 묵서는 원전을 새겨 읽는 것을 말한다.

이리하여 전통적인 구결을 퇴화 또는 간소화된 구결이라 하고, 이 자료의 묵서를 원래의 구결이라고 하는 주장이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한문을 새겨 읽는 것을 ‘석(釋)’이라고 불러 온 전통이 있으므로 ≪구역인왕경≫은 훈독의 자료이며, 그 묵서의 기재는 훈독의 표기로서 전통적인 구결이라는 명칭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여기에서 전자의 견해는 이 자료의 기재를 훈독구결(訓讀口訣) 또는 석독구결(釋讀口訣), 전통적인 구결을 음독구결(音讀口訣) 또는 순독구결(順讀口訣)이라고 구별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구결은 전통적인 뜻으로 해석하는 협의의 개념과 한문의 훈독을 지시하는 표기까지 확대하여 파악하는 광의의 개념을 갖게 되었다.

구결과 토의 어원에 대해서도 아직 정설이 없고, 한두 가지 가설이 제기되어 있을 뿐이다. 구결은 스승이 제자에게 직접 입으로 전달하는 비결이라는 뜻을 가진 ‘구수전결(口授傳訣)’의 준말이라는 견해와, ‘입겿’이라는 국어의 이두식 표기로 보는 견해로 나뉜다.

전자는 철학이나 종교의 관점에 따라 독특하게 이루어진 스승의 한문 해독방법을 제자들이 신성시하고 비결과 같이 보는 데서 생겼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이 때의 구결은 토와 구별된다고 한다.

이에 반하여 후자는 전통적인 구결이 ≪능엄경언해≫·≪선종영가집언해≫·≪금강경언해≫ 등 15세기 언해서의 발문에서 한문으로는 ‘口訣’로 적히나 번역으로는 ‘입겿’이 되고, 한자어 ‘구수전결’의 뜻인 구결이 번역으로도 구결(금강경의 六祖口訣後序)로 된 사실에 주목하여 나타난 견해이다.

국어의 ‘마디기(말+디기)·외자’가 ‘斗落·外上’으로 표기되다가 마침내 한자어 ‘두락·외상’으로 된 것과 마찬가지로, ‘입겿’의 표기인 ‘口訣’이 ‘구결’이라는 용어로 굳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편, 중세어의 ‘입겿’은 한문의 허사인 ‘之·焉·也’(훈민정음언해천자문)를 가리키며, 줄여서 ‘겿’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입겿’은 ‘입’과 ‘겿’으로 분석된다.

이들의 어원을 ‘입’이 입[口], 또는 이에서 파생되었을 ‘잎·’(현대어 읊·의 중세어 어형), ‘겿’이 사물의 부차적인 성질을 뜻하는 중세어 단어 ‘겿’과 관련되었으리라고 추정되고 있기도 하다.

토는 구절이나 문장이 끊어지는 곳을 뜻하는 구두(句讀)의 ‘두’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추정이 있다. 이두(吏讀)·이토(吏吐)라고도 한 점과, 또 토가 들어가는 곳이 구두인 점으로 보아, 이 추정은 개연성이 큰 것으로 생각된다.

구결의 발생에 대해서는 그것을 밝힐 증거 자료가 없으므로 추측만 가능하다. 한문이 수입된 초기에는 중국어의 한자음대로 읽는 문자 그대로의 음독을 하면서, 그것을 당시의 국어로 번역하여 이해했을 것이다.

이것이 되풀이되면서 한자마다 그 의미에 해당하는 국어의 새김인 훈과 독음이 고정되고, 여기에서 한자를 훈으로 읽되, 훈이 없거나 있어도 숙어인 한자는 독음으로 읽으면서 필요한 조사나 어미를 보충하여 한문 전체를 국어의 문장이 되도록 읽는 방식이 생겨났을 것이다.

이것이 ≪구역인왕경≫ 등의 한문 행간에 써넣은 묵서가 보여 주는 훈독이다. 훈독을 지시하는 표기를 음독구결과 구별하여 ‘훈독구결’ 또는 ‘석독구결’이라고 하는 것이다.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대체로 12세기 중엽이라고 추정되는 이 시기의 한문은 한자를 국어의 독음으로만 읽는 음독과 훈독의 두 가지 독법을 가졌을 것이다.

물론 한문의 이 독법은 ≪구역인왕경≫ 등의 구결 자료가 말하는 시기보다 훨씬 일찍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다가 한문이 보급되고 그 독해력이 커지면서 음독되는 한문의 구절 사이에 훈독할 때의 조사나 어미, 곧 구결을 삽입하는 새로운 음독방식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 음독을 지시하는 구결은 훈독구결과 구별하여 음독구결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보통 구결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글자대로의 음독도 막대기 모양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의미의 단락에 따라 구절 사이에 휴지(休止)를 두었을 것이므로, 이 새로운 음독은 그 전의 음독에 훈독이 가미되어 발전한 독법이며, 이 독법의 발생으로 말미암아 훈독도 마침내 쇠퇴하여 소멸한 것으로 보인다.

음독과 훈독은 중국에서 한문을 수입한 민족이면 모두 가질 수 있겠지만, 이 구결을 삽입하는 음독은 우리 나라만 가진 독창적인 방식이다.

일본어에 의한 한문독법에도 훈독과 음독이 있는데, 그 음독은 한문의 독음을 막대기 모양으로 내리 읽는 방식이다. 그런데 한 원전에 삽입되는 구결이 언제나 같지는 않다. 시대와 학파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현재 전하는 구결 자료로서 연대가 확실하고 풍부한 것은 15세기 문헌이 보여주는 음독구결의 자료가 비교적 오래된 것인데, 현대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변화를 보인다. 이에 음독구결의 변화를 살펴보기로 한다.

그 변화는 첫째, 구결의 많고 적음에서 나타난다. ≪증보문헌비고≫(권243)에 의하면, 사서삼경의 언해서 이후에 ‘然故而則’은 혹 띄고 혹 이어 읽어 기준이 없었는데 이황(李滉)과 이이(李珥)의 구결에 이르러 ‘然故’에는 반드시 구결을 달고 읽었으며, 현종 때의 송준길(宋浚吉)은 ‘然故’ 두 자도 ‘而則’과 같이 잇따라 읽었다고 한다.

이러한 증언은 근대로 내려올수록 구결의 수효가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이것은 실제의 자료, 가령 성종 때의 ≪내훈 內訓≫에 인용된 ≪논어≫의 일절을 영조 때의 ≪어제내훈 御製內訓≫, 선조 때의 ≪논어언해≫와 ≪율곡논어언해≫의 구결을 비교하면 곧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경서의 구결뿐 아니라, ≪동몽선습 童蒙先習≫과 같은 아동학습서라든지 불경의 구결에서도 나타난다. 이것을 반영하여 근대 학자들은 구결을 되도록 적게 넣는 것이 좋다는 기술을 하고 있다(≪동언고략 東言考略≫ 참조). 훈독구결에서 음독구결로 변화한 배경에도 이러한 음독구결의 축소화 경향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 구결의 변화는 표기와 관련되어서도 나타난다. 전통적으로 구결은 한자를 차용하여 표기했지만, 훈민정음 창제 이후의 언해서에서는 원칙적으로 한글로써 표기한다. 이때 차자 표기의 구결이 한글보다는 원문에 더욱 충실하다. 다시 말하면, 한글 표기의 구결이 국어에 더 가깝다.

이것은 다 같이 ≪계초심학인문 誡初心學人文≫에 16세기 후반에 차자로 써넣은 자료와 1577년 한글로 써넣어 간행한 자료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즉, 한글 구결이 동사적 표현인 데 대하여 차자구결이 명사적 표현을 보이며, 전자가 존경법 접미사 ‘·시·’를 보이면서 경어법에 민감한 데 대하여 후자는 경어법에 대하여 중립적이며, 또 한글 구결이 양적으로 더 많이 나타난다.

셋째, 원문 이해의 차이에 말미암은 구결의 변화이다. 이것은 국어사적인 대상이기보다는 경학 연구의 대상이다. 구결에 따라서 한문의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세조 때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불경을 언해할 경우에는 먼저 구결부터 일정하게 한 사실(능엄경언해 세조 발문 참조)과 세조가 ≪주역≫에 구결을 달면서 문신에게 논쟁을 시키는 등 온갖 정성을 기울인 사실(≪세조실록≫ 참조)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주역≫과 같이 어려운 경전의 구결은 그 뒤로도 교정청(校正廳)의 ≪주역언해≫와 선조 때 최립(崔岦)의 ≪주역본의구결부설 周易本義口訣附說≫ 등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데, 모두 경전 해석의 차이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유교경전에 관한 한 교정청의 언해본이 간행된 뒤로 그에 어긋나는 해석은 용납되지 않았으므로, ≪주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른 구결이 생겨날 소지가 없었고 불교서와 도교서, 그 밖의 책들에서 내용의 해석에 따른 구결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상과 같이 음독구결은 그 변화를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런데 구결은 현대 한문의 독법에도 사용되고 있고, 한글로 표기되며 드물게 차자로도 표기되는 일이 있다. 구결에 쓰인 조사와 어미가 변화를 거쳤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옛날의 구결을 그대로 사용하면 한문의 이해에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한다.

이에 한문을 읽을 때 구결을 아예 폐지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지만 대다수의 의견은 한문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구결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구결의 표기는 음독구결의 자료를 보면 원칙적으로 행간에 써넣는 방식이다. 간본에 쓰인 모든 묵서의 구결과 언해서의 원문에 나타난 모든 구결이 그러하다.

구결만 나타나는 간본의 경우에도 한글로 표기된 ≪원각경구결 圓覺經口訣≫·≪주역전의구결 周易傳義口訣≫ 등과 차자로 표기된 ≪서전대문 書傳大文≫(활자본)·≪지장보살본원경 地藏菩薩本願經≫ 등 거의 대부분이 그러하다.

그러나 한문 원문만인 본문과는 별도로 난상에 구결을 단 원문을 얹어 놓은 ≪주역전의대전구결 周易傳義大全口訣≫·≪소학집설구결 小學集說口訣≫ 등과, 본문의 구두에 권점(圈點)을 찍고 그 자리에 들어갈 구결을 차자로 난상에 표기한 ≪서전대문≫(목판본)·≪주역대문 周易大文≫ 등 간본도 있다.

구결 표기에 사용된 문자는 한글과 차자가 있다. 한 책의 구결은 한글과 차자 중의 하나인데, 묵서로 된 구결은 아주 드물지만 차자와 한글이 혼용된 표기가 나타나는 일도 있다. 예컨대, ≪육조법보단경 六祖法寶壇經≫(1496년판,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 ‘爲舍奴(샤로)’ 등이 그러하다.

구결 표기에 사용된 이들 모든 문자 자료는 국어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한글 자료는 ≪석보상절≫의 서문을 비롯하여 그 이후의 거의 모든 언해서에 나타난다. 이 때 구결 표기의 한글은 언해문의 한글과 똑같은 용법을 보이지만 차이점도 없지 않다.

가령, 각자병서(各自並書)는 언해문의 경우 간경도감의 후기 언해서부터 나타나지 않으나, 구결 표기에서는 간경도감 최초의 언해서인 ≪능엄경언해 楞嚴經諺解≫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즉, 언해문의 ‘·홀띠니’가 구결로는 ‘·홀디니’로 나타난다. 또한 방점도 간경도감 언해서의 구결 표기에서는 사용되지 않는다. 이것은 아마도 차자 표기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된다.

구결 표기에 사용된 차자는 약 110자 정도이다. 이들을 음가(音價)의 ㄱ·ㄴ·ㄷ순으로 배열하면 앞의 [표]와 같다(괄호 안에 한글로써 15세기 중엽의 음가를 보이고, 그 뒤에 약자를 덧붙여 둠). 이 [표]의 정자는 인쇄된 경우에 나타나고, 약자는 붓으로 써넣은 경우와 일부 인쇄된 자료에 보인다.

빈번히 쓰이는 글자일수록 1∼3획의 약자로 쓰이며, 특히 ‘고·니·며·야·이니·이며’ 등 빈도수가 큰 구결은 전체가 약자 표기로 고정되어 있다[예:{{%037}}(고)와 {{%038}}(니) 등].

구결 표기의 차자는 향찰이나 이두의 그것과는 구별되는데, ① 음독자 중심과, ② 음절 단위라는 두 원칙이 존재한다. 음독자 중심의 원칙은 [표]에서 ‘飛·斤·入’ 등 훈독자가 13자인 데 대하여 음독자는 7배가 넘는다.

향가나 이두 자료와는 달리 구결은 음독되는 한문 구절 사이에 들어가기 때문에 바탕인 한문에 병행하여 일어난 결과라고 생각된다.

음절 단위의 원칙은 음독자 중심의 원칙에서 음절문자인 한자를 음독하면 당연히 얻어지는데, 새김이 2음절 이상인 훈독자에서는 그 첫 음절을 채택함으로써 이 원칙이 성립된다.

국어의 음절구조가 복잡하므로 예외적으로 둘 또는 세 차자로 한 음절을 표기하는 일도 있다[예:爲隱(), 叱月隱(), 亦是隱(옌) 등]. 그러나 한 차자가 2음절 이상을 표기한 예는 없다.

유독 구결 표기의 차자는 이상의 두 원칙에 따라 정연하게 사용되지만, ① 표기 전통에 따른 차자의 차이와, ② 국어와 한자의 괴리에서 오는 불완전한 표기라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표]를 보면 같은 음절의 표기에 둘 이상의 차자가 대응되는 일이 있다.

물론 이 때는 차자의 독음이나 새김이 똑같을 경우이지만, 문자체계로서는 결점이 아닐 수 없다. 그 중 빈도가 매우 낮은 ‘加〈·知’ 등은 표기자의 자의에 의한 것이나, 나머지 차자는 유교서와 불교서에 따른 차이이다.

즉, 유교서에서는 ‘巨·里·時·衣·何’로 표기된 음절이 불교서에서는 ‘去·利·示·矣·下’로 표기된다. 이는 표기 전통에 따른 결과이다. 그러므로 구결 표기의 차자체계는 적어도 유교와 불교의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국어의 음절구조가 한자음보다 복잡함으로써 차자 표기에서 음절 단위의 원칙이 무너진 예는 앞에서 보았지만, 차자인 한자는 향찰·이두와 같이 구결을 표기하는 데 있어서 완벽할 수 없다. 불완전하고 암시적으로만 구결을 표기하는 일이 있다.

예컨대, 선행형태의 말음(末音)이 모음이냐 자음이냐에 따라서 일어나는 매개모음(媒介母音)의 연결 여부로 나타나는 교체를 무시하고 하나의 차자로써 표기하는 일(예:조사 표기의 奴·隱·乙), 모음조화에 따른 교체를 무시한 표기(예:隱·乙), 된소리와 유기음을 무시한 표기[예:乎乙地尼(홀띠니)·古(코·고)], 음절 두음인 을 무시한 것[예:是多(다)] 등이 그것이다.

차자가 갖는 이러한 국어의 불완전한 표기가 훈민정음 창제의 한 원인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훈독구결은 석독구결이라고도 하는데, 한문을 국어로 새겨서 읽는 방법을 지시하는 구결이다. 한문을 국어의 독음에 따라 읽되 구절로 끊어서 문법관계를 나타내는 구결을 삽입하여 읽는 음독구결과 대립된다.

훈독구결은 1974년 ≪구역인왕경≫ 권3의 발견으로 비로소 학계에 알려졌는데, 그 뒤로 고려시대 자료인 ≪신역화엄경 新譯華嚴經≫ 권14, ≪유가사지론 瑜伽師地論≫ 권20, ≪합부금광명경 合部金光明經≫ 권3, ≪화엄경소 華嚴經疏≫ 권35 등과 유일한 간본 자료인 ≪석화엄교분기 釋華嚴敎分記≫ 권3의 1구절(장 29)이 발견되었고, 조선시대 자료로 세조 때의 ≪원각경구결 圓覺經口訣≫(을유자본) 등도 소개되었다.

이 구결은 한글 창제 이후인 ≪원각경구결≫에서는 한글로도 표기되나 고려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조선시대 자료도 음과 새김을 빌린 한자 곧 차자로 표기되는데, 표기방법에서 음독구결과 차이를 보인다.

첫째, 음독구결은 한문의 오른쪽에만 기입되나 석독구결은 한문의 왼쪽에도 기입되고 때로는 한자 안에 기입되기도 한다.

둘째, 음독구결은 한문의 순서대로 읽어 내려가지만 훈독구결은 새겨 읽기 때문에 중국어와 국어의 다른 어순을 지시하는 부호가 필요하다.

부호는 一二三과 같은 숫자나 점(·)이 있다. 점은 역독점(逆讀點)이라 부르는데, 예컨대 타동사와 목적어로 된 구절의 한문을 새겨 읽으려면 목적어를 먼저 읽어야 하기 때문에 대격조사 ‘을/를’의 차자 ‘乙’ 밑에 찍는 것이다.

셋째, 새김이나 문법관계를 나타내는 훈독구결은 기본적으로 음독구결과 같으나 새겨 읽는 것을 지시하기 때문에 훨씬 다양하고 복잡한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구결 표기에 사용된 차자의 수효는 오히려 적은 편이다.

이러한 차이가 있으나 음독구결과 훈독구결은 꼭 같이 인쇄된 한문에 기입되므로 원문인 한문을 손상하지 않게 필획을 극도로 생략한 차자가 세필로 쓰여 이두나 향찰과 구별된다. 인쇄된 ≪석화엄교분기≫의 훈독구결은 인쇄된 음독구결과 같이 필획을 갖춘 정자가 쓰이나 한문의 협주로 표기되는 점에서 이두나 향찰과는 다르다.

요컨대, 훈독구결은 연구의 역사가 짧지만, 자료의 부족이 심각한 고려시대, 나아가서는 신라시대의 국어를 해명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 기대된다. 이미 이들 자료를 이용하여 고려시대 국어의 음운과 활용어미와 조사를 비롯한 문법을 구명한 업적이 발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두, 향찰 


2014-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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