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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악3호분 행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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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23 19:52 조회 24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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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남도 안악군 오국리(舊地名 : 황해도 안악군 용군면 유설리)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돌방봉토벽화고분(石室封土壁畵古墳)으로, 재령강 평야의 북쪽구릉 서편에 있다. ‘동수묘(冬壽墓)’로 불리며, 예전에는 ‘하총(河塚)’으로도 불렸던 무덤이다. 농지 정리 중 발견되어 1948년 고고학연구실에서 발굴조사 하였다. 조사결과 묵서명에 의해 안악 3호분은 357년에 축조되었음이 밝혀졌다. 축조연대가 밝혀짐으로써 안악 3호분은 고구려 고분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여 준다.


분구(墳丘)는 방대형(方臺形)의 봉토(封土)분구이며, 규모는 동-서 직경 30m, 남-북 직경 33m, 높이 6m의 대형분으로 석실은 언덕을 파내고 반지하에 축조하였다. 무덤 내부는 크게 2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널길, 앞방, 앞방 좌우의 곁칸, 회랑과 널방으로 구성되어 3개의 기능을 한다. 하나의 공간은 평행삼각고임을 한 방처럼 만든 널길방이며, 다른 한 공간은 널방과 앞방, 회랑이 기둥으로 구획되었고, 앞방 좌우에 통로로 연결된 곁칸이 있다.


널길방은 길이, 너비, 높이가 2.17×2.12×3.48m이다. 앞방은 횡장방형(橫長方形)이며, 좌, 우에 곁칸이 있다. 앞방의 규모는 4.88×2.73×3.47m이고 평행삼각고임 천장을 하였다. 좌측 곁칸은 크기는 1.22-1.27×2.99×2.97m이고, 우측 곁칸은 1.7×3.13-3.23×2.75m로 좌측 곁칸보다 약간 크다. 널방은 잘 다듬은 현무암이나 석회암 대석(臺石)과 판석을 사용하여 수직으로 벽을 쌓아올린 다음, 2-4단의 평행고임 위에 2단의 삼각고임을 얹어 천장을 마감하였다.


널방의 각 모서리나 벽면에 기둥이나 석재를 세워 무덤 내부를 가옥처럼 꾸몄다. 널방의 규모는 3.8×3.32×2.9m이다. 회랑은 널방을 ‘ㄱ’자상으로 돌아간다. 회랑은 길이 10.13m, 너비 0.87-0.69m이다. 회랑은 평행고임천장을 하였고, 그 외 공간은 모두 평행삼각고임천장을 하였다. 회랑의 입구에는 2개의 사각 돌기둥을 세웠고, 널방 앞부분에서 8각기둥을 3개 세우고 각각의 공간을 구획하였다. 돌기둥 위에 기둥머리를 얹어 서로 통하게 하였으며, 물갈이한 대석 2장을 사용하여 돌문을 세웠다. 무덤 내부에서는 기와, 항아리, 철제 창, 관못, 옻칠한 관재(棺材) 등이 출토되었다.


벽화는 남·녀 인물초상화와 안방·사랑방·부엌·외양간·방아간·대문간·안뜰·정원 등 생활풍속과 관련된 내용으로 하여 주인공의 생시 저택과 생활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널길 방의 벽에는 호위병 행렬도를 그렸다. 앞방에는 벽면에 수박희(手搏戱)와 음악과 무용 장면을 그리고, 천장에는 일월성숙(日月星宿)을 그렸다. 서쪽 곁칸에는 남·녀 주인공의 초상화와 정사(政事)보는 장면을 그리고, 동쪽 곁칸에는 부엌과 육고(肉庫), 우물, 방앗간, 외양간, 마구간, 차고 등을 그렸다. 널방의 천장에는 연꽃을 그렸고, 회랑에는 대행렬도를 그렸다. 특히 행렬도의 주인공은 소 수레를 타고 가고, 성상번(聖上幡)기를 들고, 의장을 갖춘 문무백관(文武百官)과 고취악대가 무사의 호위를 받으며 나아가는 모습이다.


안악 3호분은 규모와 다양한 벽화내용, 명문 등으로 인해 주인공에 대한 관심이 컸는데, 안악 3호분의 주인공에 대해서는 묵서명에 의해 동수로 보는 견해와 고구려 왕으로 보는 두 입장이 있다. 동수로 보는 입장은 앞방의 서벽 왼쪽 벽면 위에 7행 68자의 묵서명에 따랐다. 묵서에는 동수의 관직(使持節 都督諸軍事 平東將軍 護撫夷校尉 樂浪相 昌黎玄원帶方太守 都鄕候)과 출신지(遼東平郭) 및 몰년(永和十三年十月戊子朔甘六日 口安年六十九薨官) 등이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안악 3호분의 주인공은 전연(前燕)의 모용황(慕容煌)에 봉사하다가 336년에 고구려에 망명하였고 357년에 69세의 일기로 사망한 동수로 본다. 왕릉으로 보는 입장은 무덤의 규모나 벽화내용 중 256인 이상의 완전의장을 갖춘 대행렬도와 성상번 깃발 등에 따랐다.


특히 북한에서는 1960년대 초에 안악 3호분의 주인공을 미천왕으로 보았다가 장수산 일대 발굴로 황해도 일원이 고구려 영역임을 보여준다고 하여 1990년에 들어와서는 안악 3호분은 백제와의 전투에서 전사한 고국원왕의 무덤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안악 3호분은 구조가 중국의 석묘(石墓)와 유사할 뿐 아니라 벽화의 제재나 배치가 중국 후한대(後漢代)의 묘실벽화(墓室壁畵)와 유사하며, 고구려 왕호가 장지(葬地)와 관련을 갖고 있음을 고려해 볼 때 안악 3호분은 고구려 왕릉이라기 보다는 동수의 무덤일 가능성이 크다.


2014-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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