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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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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23 19:57 조회 24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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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종[ 天台宗 ]


중국 수(隋)나라의 천태대사(天台大師) 지의를 개조(開祖)로 하는 불교의 한 종파.  

후난성[湖南省] 남부 화룽현[華容縣] 출신의 지의는 광주(光州) 대소산(大蘇山:河南省 남단)에서 혜사(慧思)에게 사사하여 선관(禪觀)을 닦고 《법화경(法華經)》의 진수를 터득한 뒤, 진릉[金陵:南京]에서 교화활동을 하여 많은 귀의자를 얻었지만, 575년 38세 때 저장성[浙江省]의 천태산(天台山)으로 은둔하여 사색과 실수(實修)를 닦았다. 이것이 천태종 성립의 단서가 되었으며, 지의는 《법화경》에 따라 전불교를 체계화한 《법화현의(法華玄義)》, 천태의 관법(觀法)인 지관(止觀)의 실수를 사상적으로 정립한 《마하지관(摩訶止觀)》 《법화경》을 독자적인 사상으로 해석한 《법화문구(法華文句)》의 이른바 <법화삼대부경(三大部經)>을 편찬하였다.


이것은 중국 ·한국 ·일본을 일관하는 천태교학의 지침서가 되었을 뿐 아니라, 인도 전래의 불교를 중국 불교로 재편하는 계기도 되었다. 그의 문하인 장안(章安) 관정(灌頂)을 필두로 지위(智威) ·혜위(慧威) ·현명(玄明)을 거쳐 제6조 담연(湛然)으로 교학이 전승되었다. 그들은 지의의 삼대부경에 상세한 주석을 가하여 《석첨(釋籤)》 《묘락(妙樂)》 《보행(輔行)》을 저술, 천태 교의를 선양하였고 초목도 성불할 수 있다는 초목성불설(草木成佛說)까지 전개하였다.


당나라 말기에 쇠했던 불교가 북송 때에 부흥하여 12조인 의적(義寂)과 그의 동문 지인(志因)의 양계통에서 많은 학승이 배출되었는데, 전자를 산가파(山家派), 후자를 산외파(山外派)라고 한다. 의적의 제자 의통(義通), 그 문하 지례(知禮)의 계통이 송대에 융성하여 천태종의 주류가 되었으며, 남송(南宋) 대에는 선월(善月) ·지반(志盤) 등이 강학에 뛰어났고, 원대(元代)에는 불교 전반의 교학적인 쇠퇴와 함께 쇠하였지만, 명대(明代)에 다시 부흥하여 선(禪)과 정토(淨土)와의 융합이 이루어지고, 명 말기에는 지욱(智旭)이 교학을 진흥시켰다. 지의는 《법화경》의 정신을 근거로 전불교 경전에 의의를 부여하여 오시(五時:華嚴時 ·鹿苑時 ·方等時 ·般若時 ·法華涅槃時)의 교판, 화의사교(化儀四敎:頓敎 ·漸敎 ·祕密敎 ·不定敎) 및 화법사교(化法四敎:藏敎 ·通敎 ·別敎 ·圓敎)로 구분하였으며, 공(空) ·가(假) ·중(中)의 삼관(三觀)을 교의의 중심으로 하였다.


또한 일상심(日常心)의 일념 가운데 지옥으로부터 부처의 경지가 내재한다는 일념삼천(一念三千)의 사상과 일체가 원융(圓融)한 실상(實相)을 주장하였다. 한국에서 천태종이 하나의 종파로 성립된 것은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에 이르러서였지만, 그 교학이 전래된 것은 훨씬 이전이다. 신라의 현광(玄光)은 지의에게 법을 전한 혜사(慧思)에게서 법화삼매(法華三昧)를 배웠으며, 신라의 연광(緣光), 고구려의 파약(波若) 등은 직접 지의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특히 고려 제관(諦觀:960년 중국에 감)의 《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는 천태학의 입문서로서 크게 성행하였다. 의천의 문하에 교웅(敎雄) ·계응(戒膺) ·혜소(慧素) 등이 유명하며, 그 후에도 덕소(德素) ·요세(了世) ·천인(天因) 등이 교세를 떨쳤다. 이와 같이 천태종은 고려 일대를 통하여 크게 성하였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 척불정책으로 쇠퇴하였다.


2014-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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